신화의 미덕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고개를 들어 이 앨범을 들으라 하겠다. 20년째 현재진행형으로 장수 중인 유일무이의 아이돌 그룹이 현역으로서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무리하게 ‘젊은 척’하지 않되 그럼에도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려 끊임없는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관리된 ‘중년돌’(이들이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다니!)로서의 원숙함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점에서 신화라는 그룹의 진가와 존재 의의가 드러난다. 데뷔 20주년 스페셜 앨범으로 기획된 이 앨범 역시 그 맥락에 있다. 음악은 매끈하고 트렌디하게 잘 빠졌지만, 신화의 정체성과 역사를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다. ‘칼군무’나 아크로바틱한 안무는 없지만, 대신 그 자리를 ‘으른섹시’와 노련한 원숙미로 가득 채웠다. “난 겪을 만큼 다 겪었는데/네 앞에서만 아이가 돼”라는 가사를 대체 세계 어느 보이밴드가 이토록 ‘진정성’ 있게 소화할 수 있단 말인가. 신화라는 그룹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엿볼 수 있게 하는 한 장. 그리고, 단언컨대, 이 씬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도 신화의 이름을 대체할 그룹은 없음을 철저히 증명해내는 한 장.

파격적인 변화나 모험은 없되 무리를 하지도, 억지를 쓰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신화의 노련함을 발견한다. 천천히 나긋나긋하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신중히 상대를 유혹하는 이미지의 ‘Kiss Me Like That’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굳이 이를 감추거나 젊어 보이려 애쓰지 않는 신화라는 그룹의 색깔과 닮아 있다. 지난 ‘Touch’는 장르가 완전히 그룹의 색깔에 녹아들지 않은 인상에 순전히 개인적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새 또 다른 옷을 맞춰 입듯 자신들의 멋을 고수하면서 그 속에서 꾸준히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매번 신화의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동력이다. 혹자는 신화에게만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단 한 번의 마침표도 찍은 적 없는 1세대 아이돌인 동시에 최초의 ‘중년돌 그룹’이 되어가고 있고 그 점에 주목하게 될 수밖에 없다. 판을 뒤집어 놓기보다는 시시각각 뒤집히는 판 위에서 무너지지 않고 지속하는 법을 신화는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현역 아이돌’이나 ‘현재성’이라는 단어를 피하며 무언가 다른 것을 찾으려 했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시간이 있기에 신화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니까 말이다. 이번 앨범에는 아이돌이라는 위치에서 해낼 수 있는, 상상의 여지가 인상적이다. 과하지도 않고 질척이지도 않는 매혹은 단순한 백그라운드에도 꿈틀거리고 ‘상상하는 레벨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가사는 그저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타이틀곡이 가진 절제미와 관능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수록곡 ‘Level’에 주목하고 싶다.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대상이 바로 아이돌임이 잘 드러나며, 그 명제를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 이를 발현하기에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쇼를 더욱 화려하고 멋지게 이끌어내는 능숙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가 구현하는 감각에는 안정이 느껴져 그저 편하게 환상을 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아이돌을 “겪을 만큼 다 겪었는데”도 말이다. 너무도 근사한 아이돌 판타지에 감동하며 pick! 을 남긴다.

이번 회차의 추천작

다른 1세대 아이돌들이 속속들이 돌아오는 가운데서도 신화가 유독 돋보이는 이유는 역시 ‘현재성’에 있겠다. 단절된 적 없이 쌓여온 신화의 디스코그래피는 신화가 어느 시대의 아이돌과 경쟁하더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신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현시점에 가장 유행하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찾아와 갈아입는 것은 케이팝 아이돌 역사 20여 년 중에서도 신화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20주년 스페셜 앨범 “Heart”는 현세대 아이돌이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세련된 케이팝으로 채워져 있지만, 결국엔 신화가 제일 잘 소화할 수밖에 없는 곡들로만 잘 배치되어 있다. 20주년 기념 앨범에서도 여전히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남아, 오래 알고 지내서 가장 편안하지만 절대로 구질구질하거나 구차하진 않은, 로맨틱하게 “Kiss me like that”이라고 말해주는 아이돌이라니. 일부러 하고 싶어도 이렇게 이상적일 순 없겠다. 음악과 무대에서만큼은 언제나 ‘현역’인,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신화의 창창한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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